노무현, 이명박 선택한 국민들에 하소연"내가 민주주의를 하지 말았어야 했나요?"
오마이뉴스 원문 기사전송 2009-06-05 16:20
[오마이뉴스
오연호 기자]
"사실은 그 바보라는 말은 참 많이, 수없이 들어왔던 얘기였습니다. 바보같이 왜 그러냐고, 바보같이, 아흐 바보같이." 2007년 9월 청와대 인터뷰에서 별명이야기가 나오자 노무현 대통령은 그렇게 말했다. - 누리꾼들이 바보라는 애칭을 붙여주기 전에도 그런 말을 들었다는 거지요? "수없이 들어왔어요, 친구들한테 수없이. 그땐 핀잔으로 들어온 말입니다. 그땐 슬펐어요." 그 슬프던 것이 느낌이 달라지자 이제는 "기분 좋은" 것이 됐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엔 사람들이 붙이는 바보라는 이름이 느낌이 다르더라고요. 원칙을 가지고 욕심을 포기한 사람에게 붙여주는 애칭이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은 거죠. 나한테는 정말 영광스러운 애칭이죠. 아 그래서 그때부터 기분이 좋은 바보가 됐어요(웃음), 기분 좋은 바보가 됐어." 별명 지은 누리꾼에게 보낸 노무현의 편지 노무현이 바보 별명을 갖게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2000년 3월 22일 유니텔 플라자에 '바보 노무현'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오면서부터다. 그 글은 당시 삼성에 근무하고 있던 유중희씨(현 54세)가 썼다. 2000년 4·13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부산 출마를 선언한 정치인 노무현은 대기업 직원이자 누리꾼이었던 유씨에게 바보처럼 보였다. "굳이 떨어질 것으로 확실한 부산에서 내리 3번이나 더 떨어지는 초라한 바보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유씨는 A4용지 한 장 분량의 그 글에서 이런 희망을 적었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도 영특한 사람을 국회의원과 대통령으로 선출하여 너무나 많은 실망을 경험하였다. 그래서 이제는 전 국민이 우직한 바보가 되어 우리 대한민국에서 거짓말하지 않고 정직하며 소신과 지조를 지키고 야합하지 않는 바보 대통령이 탄생되는 그날을 기대해 보고 싶다." 유씨는 그 희망을 위해 이렇게 제안했다. 모두 바보가 되자고. "그러나 이번만은 노무현만이 바보가 아니라 그 지역구의 유권자들도 같이 바보이기를 바라고 싶다. '바보 노무현'을 국회의원으로 뽑아주는 바보 같은 부산시민들! 노무현 바보! 부산시민 바보! 그리고, 나도 그 바보의 대열에 끼이고 싶다." 이 바보 희망가가 유니텔에 올랐을 때 조회수는 불과 470회에 지나지 않았다. 그중에서 82명만이 추천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누군가가 이 글을 노무현 홈페이지에 올렸고, 이후 폭발적 조회수를 기록하면서 바보는 정치인 노무현의 별명이 되었다. 그러나 노무현은 부산에서 낙선했다. 부산시민이 그와 함께 바보가 되는 것을 거부한 것이다. 패배자 노무현은 이때 그의 별명을 만들어준 유씨에게 이메일 편지를 보낸다.
사람은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에게 목숨을 바친다! 인간 노무현이 이 세상에 없는 지금 그 문장이 우리 눈에 박힌다. 이 편지를 낙선자 노무현에게 받았던 유씨는 지금 제주도에 살고 있다. 어제 그와 전화통화를 했다. 그는 생전에 한 번도 정치인 노무현을 개인적으로 만나본 적 없고 "멀리서 좋아했다"고 했다. 그는 "대통령이 서거하기 전 검찰수사를 받을 때 '얼마나 힘드시냐'고 이메일 편지를 보냈다"면서 "제주도에 마련된 두 군데에서 조문을 했다"고 말했다. "정치 지도자는 바보가 되어야"
바보는 별명에 머무르지 않았다. 노무현의 정치 철학으로 승화됐다. 청와대 인터뷰에서 대통령 노무현은 "정치지도자는 공공재를 관리해야 하는 사람인데 그것을 잘하려면 바보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바보라는 얘기가 이런 거 아니겠습니까?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영악하지 않았다, 이거 아니겠습니까? 공공재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신뢰라고 얘기하는 것인데, 신뢰와 원칙을 위해서 자기 이익을 포기한 사람한테 붙여준 애칭이 바보 아니겠어요. 무릇 공동체 살림을 살겠다고 하는 사람이면 바보로 살아야 합니다." 그런 인식을 갖고 있어서였을까? 대통령 노무현은 CEO 출신 정치지도자에 대해 그다지 신뢰를 보내고 있지 않았다. 청와대 인터뷰가 진행되던 2007년 9월, 10월엔 17대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후보 이명박씨가 당선가능성 1위로 거론되고 있었다. "CEO라는 것은 자기 집에, 자기 호주머니에 부를 끌어모으는 사람입니다. 근데 아까 말했다시피 정치지도자라는 것은 여러 사람의 호주머니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경제분야로 따진다면, 부자들의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서 그들이 가난한 사람들과 더불어 살게 만드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더불어 사는 역할을 하는, 공공재를 키워나가는 사람입니다. 정치지도자는 공공재를 확충해 나가는 사람입니다. 개인을 살찌우는 기술이 아니라 늘 공공재를 생각해야 합니다. 시장에서 이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시장에서 공정한 게임이 이뤄지게 해야 하는 거지요. 경기장을 공정하게 만들고 시장의 게임을 공정하게 운영하도록 그렇게 관리해 나가는 사람이 정치지도자, 정치의 역할이거든요." "이명박씨는 불공정 경쟁시대에 성장한 CEO" 그런 역할을 기대하고 있던 대통령 노무현은 2007년 대선정국에서 벌어지는 장면들을 보면서 혀를 찼다. 정치지도자의 역할과 시장지배자의 역할은 분명 그렇게 다른 것인데, 여야 후보들이 앞다퉈 "경제, 경제 하면서 불가능한 것들을 내놓고 있다"고 보고 있었다. "조중동이 경제, 경제 하면서 밀고 가는데 그 프레임에 빠져 가지고 전부 경제, 경제 하고 있어요. 진보언론이라는 곳에서도 마찬가지죠. <한겨레> 독자들이나 <경향> 독자들도 다 경제를 1번으로 꼽을 걸요?" 노 대통령은 설사 경제를 잘 안다고 하더라도 시대의 요청과 이명박씨는 맞지 않는다고 했다. "(이명박씨는) 구시대, 특권과 반칙 시대의 CEO거든요. 시장이 공정하던 시대의 CEO가 아닙니다. 특권과 특혜로 돌아가던 그 시절에 유능했던 CEO니까 그 사람은 공정경쟁이 요구되는 요즘 시대에도 안 맞고, 그야말로 (약자를 배려하는) 사회투자국가에도 안 맞는 거죠." 그래서 이렇게 물어봤다. - 이명박 후보가 그런 약점이 있다면 국민들이 왜 그것을 꿰뚫어보지 못할까요? 왜 민주당 후보는 힘을 발휘하지 못할까요? "정치를 기회주의적으로 한 사람이 이쪽 후보가 되니까 (개혁진영의 선거 열기가) 완전히 죽어버리죠. 기회주의자와 구닥다리 CEO가 붙으면 선거판은 완전히 죽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도 소위 사회적 시장경제라든지 어떤 진보적 정치집단이 그쪽과 붙으면 그건 전선이 살아날 가능성이 있지만…." 여야 대선 후보가 정동영, 이명박 후보로 확정된 10월 말 인터뷰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이쪽 후보는 연설은 잘하는데 감동이 없습니다. 그 후보의 삶과 행적이 감동을 주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아버지 돈 떨어졌다고 아들이 아버지 대접 안 하고, 사장 돈 떨어졌다고 전무가 '회사 부도난다, 빨리 나가라'하고, 그러니 감동이 있겠습니까? 이쪽에서 강력하게 '이런 사회를 한번 만들어보자' 그런 것이 있습니까? 그러나 이명박 후보는 기대를 주는 것에 성공했습니다. 청계천 등을 바꾼 사람이니까 무언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시장권력이 정치권력 능가하면 민주주의 위기"
이명박씨가 대통령이 된다면 그런 국민의 기대에 어느 정도 부응할 수 있을까? 노 대통령은 당시에 회의적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인터뷰를 하면서 담배를 자주 피웠다. 2007대선이 무르익어가던 당시는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독주체제였다. 이변이 없는 한 노 대통령은 정권교체를 허용할 수밖에 없는 형국이었다. 그는 그런 상황을 답답해하고 있었다. 노 대통령이 이명박 대통령 시대의 도래를 마땅치 않아 하는 것은 그가 구시대적 CEO 출신 때문만은 아니었다. 신뢰를 주지 못한 것만이 아니었다. 노 대통령은 당시 민주주의가 위기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그것을 과연 이명박씨가 해결할 수 있느냐? 아니라고 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노 대통령이 말한 '민주주의의 위기'란? 시청광장이 경찰차벽에 봉쇄되고, 미네르바가 구속되고, 임기 중인 대학총장이 쫓겨나고, 이런 2009년 상황이라면 민주주의 위기라는 말이 실감날 터인데, 참여정부인 2007년에 그것도 현직 대통령이 민주주의 위기를 이야기하니까 처음엔 그다지 다가오지 않았다. "정치권력에 대한 시장권력의 강세가 민주주의 위기입니다. 특히 (기업에 거의 무한대의 자유를 보장해주는) 신자유주의가 득세하면서 시장권력이 정치권력·국가권력을 축소시켜 나가고 있거든요. 지금 우리 한국이 그 위치에 있지 않습니까?"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당시 진보진영에서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무비판적으로 따라가고 있다는 비판이 무성했다. 특히 노 대통령은 한미 FTA를 적극 추진하면서 신자유주의 신봉자라는 비판을 많이 들었다. 그런데 대통령은 "신자유주의 득세"에 따른 "민주주의의 위기"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것은 한두 마디 지나가는 걱정이 아니라 비교적 체계적 논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시장권력이 정치권력의 역할을 축소시켜 나가는 것은 긍정적인 면도 있습니다. 국가주도형·관주도형·개발독재형 경제를 해체시켜 나가는 데 긍정적으로 기여하고 있지요. 그러나 부작용 요소도 적지 않습니다. 국가의 권력은 (시장에서 실패한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적어도 시장권력과 대등하거나 시장을 통제 가능한 수준으로 키워야 하는데 그게 안 되는 거지요. 지금 세계화라는 거대한 흐름이 이것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거든요. 이게 민주주의 위기라는 것이죠." 노무현 대통령은 "정치권력이 시장권력보다 커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권력은 전 국민을 대표하는 권력이고, 시장권력은 시장에서 승리한 강자들의 권력입니다. 시장권력은 시장에서 패배한 사람들을 포함하지 않습니다, 대변하지도 않아요. 그래서 정치권력이 시장권력보다 커야 된다는 것은 명백한 것입니다. 결국 궁극적인 권력은 정치권력이라야 합니다. 정치권력은 이론상 국민주권이니까 전 국민의 권력이거든요." "언론권력, 시장권력과 결탁 너머 일체화" "그런데 언론은 뭐냐." 대통령은 정치권력과 시장권력의 긴장관계를 설명하면서 그 중간에서 언론권력이 어떻게 행세하고 있는지, 그것이 왜 민주주의의 위기를 더 악화시키는지를 분석했다. "언론은 전통적으로 정치권력을 견제하면서 자라났습니다. 시장권력을 견제하는 데는 본시 별로 역할이 없었어요. 정치권력에 맞서 견제하는 시민권력이었거든요, 언론은 민주주의 발전과정에서 분명히 시민권력으로서 정치권력을 견제하는 데는 역사적 업적을 남겼는데, 지금 와서는 그들이 시장권력과 결탁해버렸어요." 대통령은 목소리를 높였다. "결탁할 수밖에 없죠, 구조적으로. 수입이 거기에서 나오니까. 광고 수입의 기초가 거기 있으니까 시장권력과 결탁해 가지고 시장권력을 강화하고 정치권력을 줄여나가는 쪽으로 가고 있어요. 그러니까 자연히 시장에서 패배하는 사람들에 대한 국가의 최소한의 책무, 그것이 지금 방기되고 있는 거 아닙니까? 방기되고 있는 것이죠." 그는 언론권력이 시장권력과 결탁하는 정도가 아니라 일체가 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고 보았다. "그런데 거기서 언론이 좀 더 커가지고 스스로 시장권력이 돼 버렸거든요. 왜냐하면 옛날에는 광고 갖고 먹고 살았는데 이제는 언론 자체가 미디어 산업이 돼 버렸지 않습니까? 지금 루퍼트 머독(Rupert Murdoch, 다국적 언론재벌)이 가지고 있는 권력의 크기, 실비오 베를루스코니(Silvio Berlusconi, 이탈리아 총리 겸 언론재벌)가 가지고 있는 권력의 크기, 한국의 조중동이 가지고 있는 권력의 크기를 보세요. 시장권력으로부터 광고를 받고 대변하는 이런 계약의 관계가 아니라 이미 시장권력과 일체화돼서 그 스스로 선봉을 차지하고 있는 거거든요." 노무현 대통령은 대한민국 사회의 권력지형도를 그렇게 그리고 있었다. 그런 분석을 전제로 참여정부의 국정운영 기조를 잡았다고 했다. "우리 정부가 성공을 했든 안 했든 간에 기본적으로 우리 정부가 하려고 했던 것은 시장권력과 언론권력을 제어함으로써 시장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권리를 신장하고 또는 최소한의 기본선 아래로 낙오하는 사람들을 함께 끌어안고 가려고 한 것이죠." "부자정권이 들어서면 어찌 되는지 맛을 봐야"
2007년 가을, 퇴임을 6개월여 앞둔 대통령 노무현은 초조해하고 있었다. 도덕문제와 신뢰문제가 제대로 검증이 되지 않았는데도 "경제, 경제"하는 후보에 마음을 주고 있는 국민들에게 섭섭해하고 있었다. "지금 민주주의 문제나 도덕적 가치에 대한 문제를 전부 다 무가치한 것으로,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취급하고 있어요. 쟁점화가 안 되고 별 필요 없는 것처럼 그냥 묻혀버린 거죠. 그러나 결코 현실상황은 그렇지 않습니다. 상황은 절대 그렇게 만만치 않은데도 불구하고 이 문제에 대해서 사람들은 위기감이 없어져 버렸어요." 대통령 노무현은 기자에게 반문했다. "뭐가 해결이 됐나요? 내 속이 탑니다, 미치겠어요." 그러면서 이번엔 자신에게 반문했다. "내가 민주주의를 하지 말았어야 했나요? 민주주의에 대한 위기감이 없어진 게 참여정부에서 권위주의를 해체하고 민주주의를 확장시켰기 때문일 수도 있는데, 그럼 내가 그런 것을 하지 말았어야 했나? 아, 미치겠어." 대통령 노무현은 다음 대통령으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를 선택하고 있는 국민들을 행해 말했다. "권력이 저쪽으로 넘어가야 이쪽 사람들이 자성도 생기고 투쟁도 생길 겁니다. 지금 사람들이 위기감이 없어지고 전부 관심을 안 갖고 있는 것은 권력이 저쪽으로 안 넘어가 있으니까 그래요." 대통령 노무현은 담배를 피운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다시 또 하나를 집으며 말했다. "이제 부자정권이 어찌 되는지 한번 맛을 봐야…." 2008년 이명박 시대가 열렸다. 그 후 국민은 그 부자정권의 맛을 톡톡히 보고 있다. 그걸 경고했던 그도 예외는 아니었다. 2009년 5월 29일 16대 대통령 노무현 국민장. 수십만 명이 그의 마지막 가는 길에서 눈물을 뿌렸다. 인터넷 공간에는 뒤늦게야 그의 가치를 알았다는 누리꾼들의 고백이 줄을 잇고 있다. 바보 노무현은 그 국민들을 보고 뭐라 말할까? 인터뷰 중 그가 친구들에게 들었다는 말이 국민의 한 사람인 내게 꽂힌다. "바보같이, 아흐 바보같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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